모호한 중력


2015. 9. 12 - 10. 25

강태훈
강태훈은 지난 십여 년 동안,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통제하는 은밀하고도 강력한 사회 이데올로기와 체제들을 들춰내는 개념적 작업을 해왔다. 그것이 지역의 사건, 통치체제, 영토문제 혹은 세계의 경제 체제이거나 간에 그 범주의 차이는 있지만, 상징적 오브제와 텍스트를 중심으로 인상적인 공간설치 그리고 사진, 영상과 같은 다양한 조형언어로 우리의 삶을 억압하는, 은폐된 힘/권력을 경고해 왔다.

작가는 2005년 상징적 오브제(수도꼭지)가 결합된 시리즈 작업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지배구조를 문제 삼았던 ‘대안공간 반디’의 개인전에서부터,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의식에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조명한 2008년 전시 'Social Placebo', 그리고 영토문제를 다룬 2008년 오쿠이 엔위저 감독의 광주비엔날레, 범죄사건을 모티브로 도시와 사회 문제를 제기한 2010년 부산비엔날레 그리고 2013년 개인전 ‘재단된 환상’에서의 유령과도 같은 사운드와 영상이 포함된 설치작업 등 주로 독일을 비롯한 국내외 전시를 통해,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과 이들을 지배, 감시 혹은 통제하는 사회구조/이념의 문제를 비판적 관점에서 제시해 왔다. 

이번 개인전 ‘모호한 중력’은 작가가 다루어 왔던 우리사회의 특정 사안들에 비해 어쩌면 가장 광범위하고 또, 단일한 시각으로 파악하기 힘든 것으로 보이는 ‘인구’문제를 다루고 있다. 과거 작업들이 문제 지점들을 상징하는 오브제/텍스트를 채택하거나 설치가 주는 작업의 강렬한 인상과 장소특정성으로 일정부분 해독이 용이한 것이었다면 이번 전시의 경우는 다양한 개인적/일상적 오브제들이 결합된 형태로 주제의 난해함만큼이나 단일한 해석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물론, 마치 공동묘지의 유령들처럼 전시장 입구에서 부터 떠다니며 내려다보는 가면들(인구 장치, 2015)에서부터, 유모차(모호한 중력, 2015)가 등장하거나 12개의 젖꼭지가 달린 베개(목신의 꿈, 2015) 등의 작업 이미지에서 주제를 일정부분 추측할 수는 있다. 그리고 ’잃어버린 나머지 한 쪽의 양말을 찾는 7개의 시간‘,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가장 큰 행운을 준 잠재적 부모’, ‘장치에 의해 벌거벗겨진 독신자’ 등과 같은 작품제목에서도 인구와 사회구조가 관련된 작업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도 있으며, 분리되어 있긴 하지만 2층 공간에 따로 마련된 글들은 사회현상을 파악하고 분석하는데 있어 중요한 지표가 되는 개념인 ‘인구’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보다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전시된 양말과 시계, 소주병과 구더기, 깡통과 여우 털과 같이 몇몇 일상 오브제들의 간단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독신인 작가의 현실과 그에게 요구하는 사회일반의 시선과 관계를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흥미롭게 비틀고 있다. 이들 작업은 작가가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활용해왔던 상징적 오브제의 결합이라는 연장선에서, 그리고 다다와 초현실주의적 어법/정신과 맞닿아 있으며, 작가가 지시하는 저항적이고 비판적 맥락의 연속선상에 놓여있다.

강태훈은 평소에도 예술을 포함한 사회전반의 문제에 자신의 비판적 관점과 뚜렷한 주장을 가지고 있고 또, 심도 깊은 인문학적 연구를 병행하는 작가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자신의 사상과 배경을 강압적이거나 혹은 친절한 방식으로 작품에 주입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거울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을 작가 특유의 조형적 상상으로 오히려 가볍게 비틀거나, 때로는 감각적인 공간과 설치로 나타내거나, 기록의 방식으로 풀어놓거나, 혹은 분석적으로 다가가야 하는 개념적 작업으로 다양한 접근과 해석 가능성을 열어놓는 유연성을 보인다.  

이번 전시의 경우에는 특히, 부가적 정보를 얻기 전에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작가의 진의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 반면 오히려 오브제들의 조합이 주는 초현실적 상상과 관람자의 개별적 분석을 유도하고 있다. 이것은 이번 전시가 비록 결혼과 2세에 대한 압박과 사회 일반적 시선, 즉 작가자신이 처한 매우 사적인 문제로부터 출발하고는 있지만, 인류의 인구문제라는 주제가 주는 복잡함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인류의 인구의 증감은 여러 요인들로 변화해 왔다. 다시 말해 생존의 기본적 요건과 정비례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나 체제의 유지목적이거나 사회 생활상의 변화와 같은 여러 복잡한 문제들로 얽혀있다는 것이다. 즉 경제적 성장에 따라 인구성장이 정비례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인구의 증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고 여기에는 크메르루주와 같은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인구 증가정책이나 과거 대를 잊기 위한 우리의 풍습들도 포함된다,(Pulp voice, Ruzu, mixed media,2015)     

작가는 개인적 현실, 즉 동생이 쓰다 보관중인 유모차에서부터 촉발된 독신 노총각의 고민에서부터, 개인을 통제하는 전통과 관습, 사회의 모호한 억압적 현실을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 혹은 역사적 사실과 연구를 경유하여 인구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이는 과거 전시에서 전체공간을 고려한 설치나 유사한 오브제의 반복적 차용으로 일관된 주제를 강력하게 부각해왔던 전략과 일정부분 형식적인 차이를 보인다. 즉 가볍고 흥미로운 퍼즐과도 같은 파편적, 개별적 상황들의 은유적인 조형언어를 통해 하나의 주제에 접근하는 다각적인 경로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태훈은 기본적으로 정치, 경제, 이념, 역사, 철학 등 다각적인 사회 현상을 넘나들며 사유하며 오늘날 미술의 한계와 사회구조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도전적 태도를 가진 작가다. 과거 네온과 사진 등의 매체에서부터 최근 영상과 빛, 사운드에 까지 그의 표현매체가 확장되는 것은 미술의 흐름에서 오브제의 결합이라는 다소 익숙하고 단조로운 방식을 보다 풍성하게 이끄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형식과 표현의 문제를 넘어서 앞서 언급한 작가의 태도는, 그의 관심이 어떤 사안과 조우할지 기대하게 만드는 강점이다. 

김성연 (부산현대미술관 관장)